2009년 09월 02일
초가을의 휴일

어제는 회사 창립 기념일이라서 하루 쉬었다.
여느 평일과 같이 아침 일찍 눈이 번쩍 떠졌다. 휴일에 잠을 퍼 자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고, 게다가 전 날 밤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워 두기도 했으니.
<전날 세워 두었던 휴일의 계획>
1. 오전
- 밀린 집안 일: 청소, 침대 시트 교체, 세탁, 세탁기 급수 밸브 교체
2. 오후
- 자전거 라이딩, 홍대에서 점심 먹으면서 책보기
- 비디오 게임 – 게임 샵 방문 후 게임 타이틀 교환.
오전 프로젝트는 성료.
온 집안을 투어하고 다니시는 재미의 털들을 청소기로 말끔하게 흡수해 버렸다. 요즘 이 녀석 털이 장난이 아니다. 영양 상태에 문제가 있나? 의심이 들 정도. 털 빠지는 거 말고는 큰 문제가 없어 그다지 걱정은 안한다만, 속옷에까지 묻어있는 녀석의 털을 보면 기분이 상쾌하진 않다.
날로 쌓여만 가는 게으름 덕분에, 이사한 후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던 침대시트를 갈았다. 청색이었던 시트를 흰색으로 교체하니 침실이 전 보다 넓어 보인다. 기분이 좋다.
침대 시트, 이불보를 포함해서 밀린 빨래를 해치웠다. 시트와 이불보는 옥상에 말렸다. 날씨가 무척 좋았다. 햇볕은 나지만 그다지 덥지는 않은 초 가을의 날씨. 세탁기 급수 밸브 교체를 제외한 집안 일 종료시간 약 13:00.
오후 프로젝트는 대실패.
김실장 (내 픽시 이름)을 꺼내서 자전거나라 (집 근처 바이크 샵)에서 타이어 바람을 넣는 것 까진 좋았다. 10분간 라이딩해서 홍대 앞의 단골 게임샵에 갔는데 이런 젠장. 샵이 폐점해버렸다!
구입을 해 놓고도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았던 Grand Theft Auto와 끝판을 깨버린 Devil May Cry 4를 팔아버리고 괴혼 Tribute를 사서 오후 내내 공을 굴릴 계획이 날아가 버린 것.
홍대에서 밥이나 먹을까 하다가, 문득 홍대 대학원에 다닌다는 후배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흔쾌히 전화를 받는 후배. 포스코관 앞에서 전화를 하란다.
낑낑대며 홍대 언덕길을 올라간 후 홍대 학생들에게 포스코 관이 어딘지 물었다. 아무도 모른단다. 불길한 예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홍대 다니는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에요, 나 이대 대학원이에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넋두리를 했다. 오늘 오후는 왜 이러냐고. 여자친구는 마침 잘됐다며 이대에 가서 작년 8월에 맡겨놓은 재킷을 찾아오란다. 하긴, 홍대와 이대는 자전거 타고 10분 거리다. 못 갈 건 없지, 하면서 페달을 밟았다.
이대에 도착. 그간 미뤄뒀던 반지를 20개 맞추고 난 후 옷 수선점 도착. 여자친구는 분명 수선비 45,000원을 완불했다고 하는데, 아주머니는 수선비 55,000원 중에 20,000원만 선납되었다며 35,000원을 내란다. 아줌마와 실갱이를 벌이다 결국 여자친구가 갖고 있다는 영수증을 가지고 다시 방문하기로 결정.
가만히 서 있으면 바람이 선선한 가을 날씨지만, 여전히 햇볕은 강해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좀 더운 날씨. 땀을 뻘뻘 흘리며 후배가 조교로 일한다는 포스코관에 올라갔다. 뭔 놈의 길은 이리 복잡하며 언덕길은 높디 높은지. 포스코관 앞에서 대학 졸업한 지 처음으로 녀석을 만났다. 서양 미술사를 공부한다는 녀석. 호주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얘기, 큐레이터가 되어 갤러리에서 일할 거란 계획, 다음 날 엄마와 이집트 등등을 경유하는 여행을 떠날 거라는 일정 – 이게 제일 부러웠다. 이집트라. 피라미드라. - 등등, 밀렸던 수다를 떨었다. 아무 일이 없더라도 사무실은 지키고 있어야 하는 조교 인생인지라 5분 남짓 얘기를 하고 녀석을 올려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교동 삼거리의 LG 매장에 들러 세탁기 급수밸브를 샀다. 플라스틱 쪼가리 주제에 개당 3,000원. 세탁기에서 밸브 물이 질질 새는 꼬라지 보는 것 보다는 6,000원 따위 지불하는 게 낫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찬물로 샤워를 했다. 몸의 열기는 그대로였지만, 초가을의 쌀쌀함이 공기 속 깊이 숨어있는지 물이 꽤 차갑게 느껴졌다. 몸을 말리자마자 세탁기 급수 밸브를 교체하고 라면 물을 끓였다. 스낵면 + 참치 캔 + 김치 + 햇반 조합의 전형적인 자취생 스타일의 늦은 점심. 항상 그렇듯이 맛있다. 설거지 거리도 거의 남지 않는 편리함까지.
플레이스테이션3를 켰다. 날이 막 어두워질 무렵까지 가상세계에서 놀다가 집 밖으로 나가 집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로또를 10,000원어치 구입했다. 그 전날 꿈자리가 무척 좋았다. 자발적인 로또 구입은 아마 맨 처음이었던 듯. 꿈 얘기는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꿈 속의 이야기 때문에 잠에서 두 번이나 깼다. 잠에서 깨고 잠들고의 두 번의 순간 모두 꿈의 스토리가 이어졌었고, 현실 세계와의 연관성도 너무 깊어서 잠에서 깬 후 집에서 뭔가 없어진 게 있는지 찾아봤을 정도.
만화책을 보다가 아홉 시쯤 잠이 들었나 보다. 새로 깐 시트와 이불이 너무 부드러웠다. 정말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빌어먹을 모기 새퀴들 때문에 새벽에 두 어 번 잠에서 깼긴 했지만. 끄응.
# by | 2009/09/02 12:12 | Ignition : though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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