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기다림






엄밀히 따지면, 내가 FC서울을 지지한지 10년이 되지 않기 때문에, '10년의 기다림'이라는 제목을 건다는게 자칫 우스울 수도 있다는걸 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언제부터 North Arena에서 서포팅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10년만의 우승'이라는 문구에 그냥 따라가고 있다. (안양LG에서 FC서울로 연고를 갈아탄 슬픈 역사는 무시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하는 것은 가슴이 벅찬 경험이다. 최종전의 시작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경기장내에서 방영한 시즌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서 이미 눈물이 나려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애매한 심판 판정, 선수간의 충돌, 5만여명의 열띤 응원이 양념이 되어 90분이 지나갔고, 전광판에는 '서울 2: 제주1'라는 승리의 문구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2년 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의 챔피언 결정 최종전 패배는 좀체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이다. 사람들에게는 눈과 관련된 행복한 기억들이 있기 마련이고 내리는 눈을 보면 과거를 회상하며 가슴 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만, 2008년 이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리는 눈을 볼 때마다, 2008년 최종전 경기 종료가 임박한 무렵 수원에 쏟아붓던 치욕적인 함박눈이 떠올랐다. 저 반대편 응원석에서 난리를 치던 그랑블루 녀석들의 모습들이 오버랩 되면서.

지금, 창밖에는 눈이 온다. 눈을 보아도 이제는 2년전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난 주의 우승의 기쁨이 어느 정도 2년 전의 아픔을 상쇄한 듯한 기분이 든다. 올해는 왠지,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깨끗한 종이의 상태에서 눈을 맞이할 것 같은 생각이다.

빙가다 감독의 퇴진설과, 제파로프의 완전이적여부 등, 내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 FC서울은 다소간의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AFC 챔피언십 타이틀이라는 씩씩한 아들을 낳기 위한 산고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팀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팀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그 팀은 나를 기쁘게 할 때도 있지만, 가지각각 비열하고 치사한 수법으로 날 실망시킬 때가 훨씬 더 많다, 고 닉혼비가 말한 적이 있다. 선수 및 감독의 재계약과 관련된 문제들에서 부터 갖가지 팀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날 기쁘게도, 또 열받게도 하겠지만 이 팀을 지지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내년도 지켜보겠다. 그리고 그 내년도 지켜보고, 나아가 언젠가는 태어날 내 아들과 함께 이 팀을 지켜보겠다.





by spaceboy | 2010/12/08 10:05 | Ignition : though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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