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ay Trip





 생일.
 어디든 떠나야만 했었던 듯.
 서울에 있었으면 여지없이 술에 취해서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다 비참하게 잠이 들었을 것이고,
 그것은 최근의 내 상태를 여지없이 악화시켰을 거란 생각이 든다.

 11시에 청량리에서 묵호행 기차를 탔고, 새벽 4시 30분에 묵호에 도착했다.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바닷가 외딴 마을의 기차역 대합실에서 책을 읽었다.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벽녘, 어딘가에서 혼자 책을 보는 시간이라니.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묵호 해안으로 부랴부랴 향했다. 묵호 해안공원에서 바라본 수평선은 놀랍도록 넓었다. 시야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을 가득 채우는 수평선.
 문득, 20대의 마지막 12월 31일을 서해에서 맞이했던 기억이 났다. 혼자 찾아간 석모도에서 나의 20대와 함께 사라져가는 태양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 해가 바다에서 떠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게 문제였던 것일까, 지난 4년간의 이런 반복들은?' 주책맞은 생각이 들었다.

 묵호에서 관광 안내 브로셔를 보니 묵호항에서 울릉도행 배가 뜬단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랴 싶어서 묵호의 등대들을 기웃거리다가, 돌담길의 어여쁜 시화들을 구경하다가, 묵호 해안 도로를 거닐다가 묵호 여객 터미널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았다. 불길한 예감.
 매표소로 가 보니 매진이란다.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줄 테니, 출항 15분전에 대합실로 오란다.
 터미널 밖에서 봄 볕과 담배를 즐기다가 매표소로 가니 다행히 취소표가 생겼단다. 티켓을 끊고 승선.

 출항도 하기 전부터 배가 울렁울렁 거리더니, 움직인지 5분도 안되어서 배가 아래위, 좌우로 요동을 친다.
 멀미 따위, 버티는 건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미터 파도에 곡예하는 배가 불러일으키는 멀미는 내 육체적 한계를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식은땀이 났고, 구역질이 났지만 왠지 '토하면 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꾹 참았다.

 200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구토를 하는 소리가 합창 같았다.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 꾸엑꾸엑꾸엑 거리는 소리가 참 묘하게 들렸다. 성능좋은 녹음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박 3일 같았던 2시간 30분. 정말 길었다. 이건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울릉도 항에 도착했다. 단단한 육지. 시원한 바람. 담배불을 붙이고 첫 모금을 빨아들이니, 그제서야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제정신을 차리는 데는 담배 한 까치면 족했다.

 즉석에서 결정내렸던 울릉도행이었기 때문에 사전 정보가 있을 리가 없다. 맵을 보고 일단 길을 나섰다. 그리고 챙피하게도 전망대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탔는데, 당일치기의 짧은 일정에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절경이다. 어제 눈이 내렸다는 울릉도의 나지막한 산들도, 그리고 방해물이라곤 찾아볼 수 있는 바다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케이블카를 관리하던 아저씨들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울릉도에서 딱 한끼만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멀미 때문에 죽을뻔 했는데, 돌아가는 길은 어떡하죠?', '5시 30분 배를 타고 묵호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때까지 무엇을 하면 알찰까요?' 등등의 내 어리석을 질문들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대합밥', '울릉도 특산 멀미약', '해안도로 산책'.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 대합밥을 먹었고 (음. 꽤 맛있었다), 울릉도 특산 멀미약을 구입해서 백팩에 챙기고, 해안도로 산책길에 올랐다. 깎아지른 울릉도 외벽을 타고 만든 해안도로. 파도소리를 들으며 코너코너를 꺾어 들어가는 묘미가 있었다. 간간이 해안 동굴이 나타나 무료함을 덜어주었고, 파도소리는 거칠고 시원했다. 내려다 보이는 바닷물도 꽤나 투명해서 바닥이 보일 정도였다. 좋았다.

 울릉도 항으로 돌아오니, 배가 들어오기까지 30분 정도가 남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다. 사랑을 담고 떠나는 배를 그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돌아오는 길의 파도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배를 타기 30분 전에 복용한 멀미약이 제기능을 했는지, 배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로록 잠이 들었다. 깊은 잠을 잔 것 같다. 묵호항에 도착하니, 기대도 하지 않았던 서울행 셔틀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그리 바라마지 않은 서울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고, 난 34살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이며, 쓰잘데기 없는 각오 운운에 대해서 정리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싶진 않다. 그냥 나는 떠났고, 기분이 좋았다. 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by spaceboy | 2011/03/27 22:37 | Air : Out of the City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catology.egloos.com/tb/277634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