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형님이 가셨다.
형님이 가신 다음날 아침, 먹구름이 낀 듯 먹먹한 기분은 마치 박근혜의 당선이 확정된 다음날 아침의 그것과 같았다.

그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소주 한 잔 하고, 조용한 집에 앉아서 차분하게 글을 써 봐야겠다. 

이 글 아래에, 하나둘씩 그와 관련된 기억을 남겨보고자 한다. 생각이 나는 장면들을 무작위로.



1. 부산 괴정초등학교 6학년 전체에서, 나는 '안녕'의 영어 랩을 모두 외우던 유일한 학생이었다. 노래가 막 뜰 무렵, 혼자 랩을 흥얼거리던 내게 친구들은 가사를 적어달라고 부탁했고, 우쭐거리면서 한글로 영어가사를 옮겨줬던 기억이 난다. '매니가자올레터닝어라운. 암쏘타오버데어테리블사운'. 뭐 대충 이렇게.

2. 중학교 2학년 때 Home 앨범이 나왔다. 테입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던 건 당연. 아랫층에 동갑내기 친구가 살았었는데, 아마 이름이 이동희였나? 아무튼 이 친구가 테입을 복사한다고 빌려갔다. 하루쯤 지나서 테입을 돌려받았는데, '외로움의 거리'를 듣다가 중간 부분에서 테입이 늘어난 걸 발견했다. 그 녀석의 낡은 더블데크 카세트가 씹어먹었을거라 생각했다. 이미 앨범을 전부다 외운 참이라 그닥 불평을 하진 않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움의 거리'를 흥얼거리다가 보면, 그 늘어난 부분은 늘어난 음악으로 내 귀에 기억되고 있다. 

3.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반에 박기혁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저조한 성적을 만회하느라 나와 같은 학원을 다녔다. 가까운 동네에서 살았던 녀석. 따스한 봄날이었을거다. 같이 버스를 타고 주말에 학원에 가고 있었는데, 내가 N.EX.T.를 듣는 걸 보고 그런 음악이 도대체 뭐가 좋은지 자기는 모른다는 말을 했다. 30분 가량이 걸렸던 버스타고 학원 가는 길.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나는 그에게 차분차분히 내게 그의 음악, 밴드가 한국에, 한국의 음악 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내 설명이 먹혔는지 그는 신해철과 N.EX.T.가 당시까지 발매된 음반을 구매했고, 곧 팬이 되었다. 

4. 고교시절 언젠가, N.EX.T.가 KBS 빅쇼에 출연했다. 출연 소식을 듣고 몇 주동안 기다렸었는데, 학원 보충수업과 시간대가 겹치게 되었다. 당연히 난 학원 보충수업을 제끼고 집에서 생방송을 지켜봤다. 1시간의 방송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던 기억이다. 

5. 대학교 1학년 가을, 그를 처음 보았다. 경희대 대운동장에서 축제 비슷한게 열렸는데, N.EX.T.가 라인업에 올랐다. 총 네 곡 정도를 불렀었는데, 너무 흥분해서 손에 들고 있던 셔츠를 집어던져버렸다. 던졌던 사실 조차도 잊고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무언가가 발길에 채여서 내려다봤더니 내 셔츠였다. 여름동안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샀던 Quiksilver 셔츠. 좋아했던 옷이었는데, 잃어버렸으면 큰일 날뻔했다. 10년 넘게 간직하고 있다가, 작년 옷정리를 하면서 재활용 의류 수거함으로 떠나보냈다. 

6. 언제인지 기억에도 남지 않았지만, 장충체육관에서의 단독공연을 봤다. 무려 4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엄청난 열기와 환호성. 그리고 체력이 딸려 공연 막바지에 공연장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관객들 정도가 생각난다. 그리고 웬지 모르게, '영원히'와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들을 때 눈물이 났다. 

7. 2006년 겨울. 홍대 V홀에서 N.EX.T의 연말 공연이 열렸다. 공연 전, 해철형이 '공연때 잘 노는 사람들, 백스테이지 파티에 초대할꺼니가 재밌게 놀아봐'라고 했다. 뭐, 그런 혜택이 아니더라도 잘 놀았을텐데, 결국 간택이 되었고, 며칠 뒤에 따로 열린 애프터파티에 갔다. 객석에서 바라본 그들이 아니라 같은 높이에서 만난 멤버들의 키가 의외로 작은 점에 깜짝 놀랐고 (해철형 키가 작은 건 알았다만 김세황도 별로 안크더라), 다들 술을 엄청 마시는 걸 보고 두번 놀랐다. 그냥 넋이 나간 상태로 두어시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8. 백분토론등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나와 궤를 같이 하며 큰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는 해철형을 보고 마음이 항상 후련했다. 

9. 사교육 광고에 출연한 해철형을보고 엄청 실망하며, 그의 음악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10. 그리고 형이 떠났다. 떠난 뒤 비로소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내가 어린 시절, 학교와 부모, 형누나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을 나에게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고, 개인을 위한 사회의 정의, 소수를 위한 강한자의 희생과 용기, 새로운 것에 도전함의 중요성, 그리고 소중한 것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서 그의 음악을 통해 말을 건넸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항상 '대상'과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그걸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의 사후, 그의 가사들을 곱씹어 읽어보고는 이제야 그걸 알게 되었다. 


가끔 그가 무척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음악을 꺼내 듣는다, 고 쓰면 너무 상투적인데다가 거짓말이기도 하니 그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그리울 때, 내가 아직도 외우고 있는 그의 노랫말들중 일부를 가끔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있다. 


투쟁의 길 위에서 항상 질주하시던 형님. 
길 끝에서는 조용히 영면을 취하시길. 



by spaceboy | 2014/10/28 15:12 | Electrification : muziqu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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