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WAY ONLY, PLEASE DO NOT TURN BACK



Treetop Walk at MacRitchie Reservoir Park




 나는 마흔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혼자 싱가폴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마흔이 되기 며칠 전, 혼자 MacRitchie Park에 산책을 갔다. 코스가 생각보다 길었다. 4시간 가량이 걸렸다. 산책이라기보다는 트레킹에 가까웠던 듯. 정글과도 같던 산길. 커다란 도마뱀도 봤고, 원숭이 친구들과 인사도 나눴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Treetop Walk라는 다리에 이르렀다. 워낙 좁은 다리여서 일방통행일 수 밖에 없었고, 다리 초입에는 One-way only - Please Do Not Turn Back 이라는 사인이 있었다. 
 
 그게 내 삶을 말하는 듯해 그 사인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나는 2007년에 서른이 되었었다. 에델만에서 PR일을 하고 있었고, 그 해 말에 아디다스에 입사했다. 홍대 부근의 조그마한 원룸에 살고 있었고, '아디다스코리아의 지사장'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던 꿈 많은 청년이었다. 그 때부터 한 참을 걸어왔나보다. 많은 기억들을 속에 품은 채, 혹은 등 뒤로 내버려 둔 채. 

 엄마가 죽고 새엄마가 생겼으며 아버지와는 의절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회복했다. adidas Originals, Burton, Vans 그리고 Heineken 이라는 위대한 브랜드들의 마케팅 담당자로 근무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회사의 정치 싸움에 말려 배신도 당하기도 했던 순진하고 꿈많았던 30대 초반의 허사원은 어느덧 부장이 되었고 회사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게 되었다. 페스티벌과 공연에서 많은 밴드들을 만났고 또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오랜동안의 드림카였던 랭글러 루비콘이 첫 차가 되고 30대 마지막 선물로, 수고했던 나 자신에게 바이크를 선사했다. 사람들은 내게 오기도 했고 떠나기도 했다. 싫어하는 사람도 생겼고 너무 좋아해서 죽을때까지 같이 가고 싶은 친구도 생겼다. 여행은 내게 많은 얘기거리들을 건네주었고 아직도 내게 계속 떠나라고 얘기를 건넨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하고 모싱핏에서 코뼈가 뭉개지기도 했다. 매형과 매제가 생겼고, 두 명의 여자조카, 두 명의 남자조카가 그들과 누나/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야구, 스노보드, 서핑, 캠핑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가 귀찮아지기도 했지만, 항상 '뭔가 재밌는게 없나' 기웃거리는 성격은 여전하다. 축구는 30대가 되면서 흥미를 조금 잃었지만, 아직까지 Arsenal은 나의 팀, 나의 사랑. Ian Brown과 두 시간 동안 버스 옆자리 대화를 나누기도, Jamiroquai의 Jay Kay와 축구 얘기를 하다가 싸우기도 했던 거짓말 같은 순간도 있었다. 요리가 많이 늘었고 그림은 가끔의 낙서질 외에는 거의 그리질 않는다. 어설프게 베이스기타를 배워 두 번의 회사 이벤트용 공연을 했고 진엽이의 결혼식에서 다니엘/지원과 함께 기타를 쳤다. 아직까지 기계/전자장비들과 친하지 못한건 여전하고 사람 이름 기억하는게 서투르다. 조이가 죽었고 재미는 이제 15살 노묘가 된다. 

 그리고 난 결혼을 했고, 귀엽고 착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경리단길의 자그맣고 이쁜 땅콩 주택에 살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삶이기에 꽤나 열심히 살아왔다, 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최선이었나, 100%의 노력이었나, 고 물어보면 부끄럽게 고개를 저어야 하겠지만, 일직선인 길 위에서 안간힘을 써 온 건 사실이다. 이곳에서 퇴근하고 풀장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한 잔 하고 있으면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볼 빨갛던 부산촌놈 허재석이 하이네켄 싱가폴 APAC 본사에 파견나와있다, 라... 아직도 멀었지만 성취한 것들에 대한 만족감은 기분을 살짝 들뜨게 하는 건 사실이다. 

 이제 마흔. 지금까지의 삶과는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재밌을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책임'을 안고 살아가야할 듯해 살짝 마음이 무겁긴 하다. 근데 엄청 설레고 두근거린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지금 살짝 든 생각인데, 서른에 접어드는 10년전의 나도, 지금과 비슷한 생각과 기분을 안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했던 것 같다. 항상 아래 문장을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처럼.  

 "나야 항상 파이팅이지."

 


by spaceboy | 2017/01/02 15:12 | Ignition : thoughts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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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7/01/30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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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7/02/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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