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마라톤





 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올 초에 갑자기 '그래 올해는 하프를 뛰어보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여름이 되기 전, 매주 두 세번씩 근면 성실하게 달렸다. 매년 초에 New Year Resolution을 몇 가지 세우기는 하는 편인데, 올해도 마찬가지로 몇 가지 계획을 잡은 것 중에서 그나마 만만하고 실현 가능성이 보였던 녀석이 러닝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언제 하프에 도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을 잡지 않아서였을까, 일주일에 세 번 뛰던 러닝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한 번이 되다가 여름 무렵부터 더 이상 뛰지 않게 되었다. (맥주 성수기 시즌 때문에 바빴다. 손석원이 퇴사해서 정신이 없었다는 이유는 챙피하니까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근데 이미 언급하고 있다)

 아무튼 뛰는 것을 멈추고, 그와 정비례하여 야근이 폭증하기 시작했고, 그와 또 정비례하여 야식을 엄청 열심히 먹어댔다. 그런 나쁜 것들에 정확하게 반비례하여 운동량은 줄어들었으니 결국 나의 몸무게는 72.5킬로를 찍게 되었다. 결혼 전의 평균 몸무게는 65~66킬로그램이었으니, 3년만에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던 체중이 나이 마흔이 되면서 제대 이후의 정점에 오른 것이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확 놓아'버리는 순간 꼴불견 뚱뚱이 중년이 되어버리겠구나, 하는 불안감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군대 있을 무렵, 몸무게를 78킬로까지 찍어봐서, 뚱뚱한 내가 얼마나 추해지는지는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다. 가뜩이나 못생겼는데). 탄수화물 섭취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점심에는 샐러드로 식사를 대체하고, 그리고 목표를 잡고 달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목표는 11월 19일 손기정 마라톤 하프코스. 딱히 손기정 선생님을 기리고자하는 마음은 별로 없었고, 하프코스 훈련 프로그램을 짜다보니 플랜을 짠 순간부터 약 한 달 뒤인 손기정 마라톤이 적기였기 때문이다. 

 러닝을 시작한 순간부터 매일매일 필사적으로 뛰었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를 뛴 것 같다. 평일에는 주로 남산 코스를 뛰었고, 주말에는 7킬로부터 시작하여 매 주 거리를 늘려갔다. 그리고 대회 1주일 전에는 영표와 15킬로를 뛰면서 대회 준비를 마무리했다. 

 뛰는 날은 추웠다. 무지 추웠다. 영하 6도라고 일기예보 앱은 알려줬는데, 체감은 15도는 되었었는 듯. 하프마라톤 출발 화약이 터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3킬로 쯤이 지나니 더워지기 시작했다. 추위에 엄살 떨면서 옷을 좀 껴입었었는데, 금세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버리기도 아까워 그냥 입고 끝까지 뛰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업힐을 지나 전환점을 돌고 잠실로 돌아가는 길. 18킬로미터 지점까지는 2시간짜리 페이스메이커 아저씨를 졸졸 잘 따라갔지만, 2킬로여를 남겨두고 포기. 아저씨 잘 가세요, 라고 속으로 말하고 최대한 완주를 목표로 무거운 다리를 이어갔다. 마지막 1킬로에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를 골백번 되뇌였던 듯. 

 결국 걷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21킬로를 완주했다. 기록은 2시간 3분 몇 초. 처음 뛰는 (엄밀히 따지면 대학 때 이후로 두 번째 이긴 하다) 사람 치고는 엄청 잘 뛴거라고 영표가 칭찬해 주었다. 레이스를 마치고 스트레칭을 하고 어깨가 아프다는 영표와 작별하고 (이 미친놈은 그 날 밤에 또 뛰었던다)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운전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내 다리는 멀쩡했다. 스트레칭도 잘 했고, 그닥 커다란 피로감도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무릎이 펴지지가 않았다! 겨우 다스려 집으로 올라가는데 계단에서 한칸한칸 너무 고생하면서 올라갔다. 샤워를 하면 낫겠지, 했는데 별반 차도가 없다. 누워서 한 숨 자고나면 낫겠지, 했는데 마찬가지다. 영양가 있게 라면에 계란/스팸 넣고 끓여먹고나면 낫겠지, 했는데 통증만 더 심해졌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다!!!고 걱정 걱정을 했는데, 이틀 지나니까 아무렇지도 않네. 허벅지 근육이 놀라고 뭉처서 무릎 관절을 눌렀기 때문이라고 네이버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보통 이 쯤 글을 쓰면, 레이스를 하면서 느꼈던 기분, 완주를 하고 나서 '아, 이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 는 클리셰로 마무리 하겠지만 남사스럽고 귀찮아서 이제 그만. 

 근데 뛰는 건 참 좋은 거다. 너도 한 번 뛰어 봐. 참 좋아, 뛰는 건. 






by spaceboy | 2017/11/28 21:37 | Ignition : though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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